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의 난민 수용 논란 (문단 편집) ==== 수용찬성론 ==== 어느 나라나 난민들은 대체로 젊은 [[남성]]이 대부분이다. 한국 내 시리아 난민의 경우 2017년 12월 31일 기준으로 1353명이고 대부분이 난민인데, 73%인 983명이 남성이다. 같은 기간 한국에 거주했던 예멘인은 454명으로 역시 73%인 330명이 남성이다. 이를 근거로 이들을 난민으로 위장한 [[불법체류자]]로 보는 여론이 있다. 그러나 이는 가족들이 구성원 중 젊은 남성 하나라도 살리려고 난민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지역의 경우, 교통이 통제 혹은 기능 상실의 우려가 높아 해외로 자력 도피할수 있는 인구층은 긴 여행을 이겨낼 수 있는 젊은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다 같이 난민으로 도망가는 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랜도 블룸]]이 만난 한 [[시리아]] 난민 남성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남자]]들만 달아나니 비겁하다? 지금 [[시리아]]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에쉬]]나 [[시리아군]]까지도 이젠 무차별로 남자들을 강제 징병까지 하고 있어요. 다에쉬는 징병을 거부하면 [[이슬람]]의 적이라며 잡아 가두고 협박과 구타와 고문까지 하고 그래도 거부하면 [[참수]]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남성의 온 가족을 죽이던지 [[여자]]들은 대놓고 [[성노예]]가 되는 거라고요! 이런데 남아서 뭘 어쩌란 말인가요? 우리가 다에쉬에 들어가 총 들고 비무슬림, 아니 무슬림이라도 따르지 않은 이들을 고문하고 죽여야 한다는 겁니까? 그럼 무기도 없는 우리들에게 맨주먹으로라도 그놈들에게 맞서 싸우라고요? 시리아군이니 반정부군들도 다들 다를 거 없이 미쳐가는데 대체 남아서 뭘 하라는 겁니까? 집에서도 아내와 늙은 부모가 "너만이라도 달아나라." 합니다. "남으면 되려 우리 가족 모두가 해가 된다. 차라리 너만이라도 안전한 곳에 가라." 이런답니다[* [[한국 전쟁]]기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 중 혼자 월남한 남자들이 많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조선인민군]]에 끌려가느니 너라도 도망가라." 하고 가족들이 아들, 아버지만 월남시킨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적어도 아내나 아이들은 데려오고 싶었어요, 하지만 놔두고 가는 게 더 안전하답니다. [[다에쉬]]도 적어도 식구라도 남아 있다면 그들을 생각하여 돌아오던지 아니면 다에쉬에게 저항하는 일은 못한다고 인질 같은 존재로 놔둬서 그나마 건드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놔두고 온 거죠. 그런데 그저 남자만 왔다느니 뭐니라며 아무 것도 모르고 욕하고 비난만 하더군요. 또한 애초에 남겨둔 가족이고 뭐고 없기도 하다. [[올랜도 블룸]]을 만난 17살 시리아 소년 타렉 이브라힘은 지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미쳐가는 내전 상황에 식구건 모든 걸 잃고 홀로 남아서 난민이 되는 남성도 많습니다. 저는 내전 중에 집도,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이웃도 죄다 잃었어요. 남은 건 폐허 속에서 찾아낸 가족 사진 몇 장, 옷 조금, 타버린 돈, 배낭 하나와 가족이 쓰던 옷이나 신발 등등 잡동사니 뿐. 이렇게 [[유럽]]으로 왔지만 희망이 없어요. 돌아갈 곳도 이제 피붙이도 없어요. 그런데 조국을 떠나 비겁하다?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오면서 느낀 게 뭔지 아십니까? 나랑 같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심지어 10살도 안 된 아이들까지 홀로 와요, 부모도, 친척도, 누구도 없어요! 그렇게 분노하며 말하는 타렉의 곁에는 10살 정도 여자아이가 말없이 있었다고 한다. >이 아이도 나랑 같아요, 부모도 없이 난민 행렬로 와서 떠돌더군요. 이런 아이들은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당하거나 쇠약해져 죽어가요! 이 아이도 홀로 남아서 피난 와중에 가진 돈도 빼앗기고 굶주리고 물에 빠져 죽어가던 걸 구해줬습니다. 저 하나도 벌어먹기 어렵지만 도저히 놔둘 수 없어서 저랑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죽은 여동생이 입던 옷을 가져왔는데, 이 아이에게 맞아 추위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어 다행이더군요. 시리아 내전의 경우 초기에는 주변에 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많았다. 일단 가서 일자리를 구하고 자리잡으면 안전하게 가족도 초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으로 올 때 아내와 자녀를 데려오지 않고 혼자 왔던 젊은 아버지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많은 시리아 난민들은 이후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자,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같이 왔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이산가족]]이 되었고, 늦어버렸다. 이제는 데려올 수 없으니 열심히 일해서 시리아로, 난민캠프로 돈이라도 보내야겠다고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EU가 직접 발표한 공식 통계도 비슷했다. EUROCAST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8년 EU 회원국 28개국의 보호 신청자는 총 63만 명이었고 그 중 53만 명이 첫 신청이었는데, 70%가 35세 미만의 젊은이였다. 또한 18~35세가 전체의 거의 절반(48%)이었다. 18~35세 난민 중 70%가 남성으로 역시 젊은 남성이 많았다. 이런 이유는 젊은 남성들이 징집 대상이기 때문이다. 후티 반군의 점령 지역에 있던 젊은 남성들은 거의 납치되다시피 하여 집총을 강요당했다. 거부하면 정부군과 한편이라고 몰아세우면서 감금하거나 고문하고 심지어는 살해했다. 또 위에도 썼지만 '적응력'이라는 현실적인 요소도 작용했다. 모든 구성원이 난민 행렬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가장 영리하고 건강한 젊은 남성을 우선 떠나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법적)난민으로 인정만 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족 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두가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육체노동이라도 해서 외화를 벌어 가족들에게 보내줄 수 있다. 낯선 곳으로 가족 구성원을 보낼 때 여성보다 남성을 먼저 보내는 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때 피란길에 오를 수 있었떤 것도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한창 [[산업화]]가 진행될 때 서울이나 대도시, 산업도시로 유학하거나 취업하는 것은 [[장남]]이나 똘똘한 [[아들]]의 몫이었다. 물론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 운명을 개척하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날 권리는 남성과 여성이 차별 없이 누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환경은 동등한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난민 여성은 성폭력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등한 노동의 기회도 누리지 못한다. 한국사회도 남녀 임금 격차 문제가 고질적이다. 이주나 더 나은 삶을 결심한 가정이 구성원 가운데 젊은 남성을 먼저 보내 상황을 살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멘 난민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역사적 배경도 문화도 다른 [[예멘 내전]]을 [[6.25 전쟁]]과 1대 1로 비교하는 논리는 옳지 못하다. 현 예멘 내전의 경우 반군과 정부군 둘 다 막장인 상태인데다 일반인들까지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는데, 목숨바쳐 충성할 만한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주장이다. 한국전쟁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민족의식이 가장 뚜렷했던 시기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각자가 믿는 이상을 두고 벌였던 전쟁이라면, 예멘 내전은 애초부터 종교와 종파 그리고 부족이 더 우선시되는 곳에서 각자가 속한 집단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모양새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순국선열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멘은 한국이 아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난민 또한 대부분 민심이 탈레반에게 넘어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게 된 상황인데, 저항 운동 같은 것도 일단 뒷받침할 민심이 있어야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순국선열들과 난민들을 비교하는 것이 모욕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문제가 있다. [[독립운동가]]들 역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해외로 임시로 도피하여 활동한 적이 있다. 이는 말만 다를 뿐이지 실질적인 정치적 난민과 다를 바가 없다. 더불어 [[신흥무관학교]]를 [[만주]]에다가 지은 것 역시 일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우당 [[이회영]] 선생이 가산을 처분해 만주로 이주한 것 역시 표현이 다를 뿐 실질적으론 난민과 다를 바가 없음을 상기해야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부당한 탄압과 전쟁에 맞서 싸워야 할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에 맞서지 않고 도망치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지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맞서지 않았다는 것을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북한이탈주민]]를 비롯한 여러 망명자들을 내부에서 변혁을 시도하지 않은 배신자 혹은 비겁자로 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비겁해서 그곳을 탈출했는지 그 자체가 불가능해서 탈출했는지는 누가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또한 한국인은 절대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이 잘못된게 일본의 [[재일교포]]와 중국의 [[조선족]] 다수가 [[한국전쟁]]당시 전쟁을 피해 일본과 중국으로 도피한 피난민의 후손이다. 물론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일제 패망후 본국으로 돌아왔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제주 4.3사건]]때 [[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매우 많이 도피했는데 이는 일본우익들이 재일교포를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간 비겁자 집단이라고 비난하는 근거가 되고있다. 더 멀리 역사를 따지자면 한민족은 [[단군 책임론|원래 요동 일대에 터를 잡았다가 버티지 못하고 한반도로 탈주한 역사가 있다.]] 세계사로 놓고 봐도 미국 건국의 배후에는 종교 탄압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도망간 청교도들이 있다. 무엇보다, 누구나 [[국적이탈]]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에 대한 보호를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자신이 태어난 곳, 주로 생활을 해왔던 터전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국가가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내란]], [[전쟁]], [[판데믹]] 등으로부터 당해 국가가 책임을 온전히 지지 못하는 것은 당해 국가의 잘못이며, 또한 이러한 혼란으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오로지 소수의 권력을 지배하고 있는 자만이 권력을 유지한 상태로 국민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정치를 한다면 당연히 [[사회계약론]]에 근거하여 국민은 권력 투쟁에서 싸울 수도 있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국가를 버리기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난민을 받아주는 국가에 입국하여 이민을 받아 생활을 할 권리는 제3자인 수용 국가를 당사자로 하므로 그 국가가 난민을 받아들이는지는 별론으로 한다. 또 난민들이 나라를 버렸다고 호도하는 반응 다수는 대체로 이슬람국가 출신 난민에 집중되어 있고, 중공을 피해 영국으로 탈출하는 홍콩인, 탈북자, 혹은 다른 망명자들에게는 그러한 비난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난민들은 도망치지 말고 고향에 남아서 항쟁해야 한다'는 명분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아니면 특정 부류의 난민이 싫어서 흠집내기로 찾는 구실에 불과한지도 고찰해봐야 할 것이다. 일단 찬성론 쪽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본 문단은 '한국도 난민을 수용할 의무가 있다'보다는, '나라를 버리고 난민이 되는 데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원인이 있으며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에 무작정 비난받지 말아야 한다'에 가깝고, 후자의 주장이 반드시 '그러므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